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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창작/나의 일상 속 창작

국립현대미술관 한국 추상미술~현실주의까지

by 편식왕냐옹이 2025. 8. 13.

 

게으름으로 인해 봐야 할 전시를 놓친 나란 인간.. 론뮤익 전시를 보겠다고 다짐했는데 결국 어영부영하다가 놓쳐버리고..

그래서 개학 전 그래도 하나는 봐야하지 않을까 싶어서 무작정 현대미술관으로 저돌맹진!!!

 

 

사랑해 이노스케

 

 

한국미술하이라이트라고 해서.. 사대주의자모먼트 발동해서 재미있을까...? 하는 우려 속에 2000원을 내고 입장했는데 도슨트님의 설명을 들으며 내가 얼마나 편협한 사람인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한국미술이라고 하면 동양화만 전시될거라는 나의 착각과는 다르게 일제강점기 이후부터 현대까지 한국미술이 추상미술부터 시작해 실험미술, 다큐 등 얼마나 다양하게 변화해왔는지 살펴볼 수 있었다. 

 

 

 


 

 

 

 

1. 전시 구성 및 용어 정리

 

💚 추상미술: 일제강점기 이후로 나타난 추상미술은 일본을 통한 간접적 수용에서 시작됨. 하지만 그 안에서도 한국적인 정신을 담으려 노력함. 대표적 작가로는 김환기, 유영, 남관 등이 있음. (1950년대~1970년대) 

💚 실험미술: 1960후반~70년대까지 꽃피웠던 아방가르드 미술 운동. 기존 예술의 가치, 인식, 개념을 전복시켜 새로운 표현 방식과 매체를 도입하지만 서양과는 다르게 한국의 정신을 이어가려 함. 저항정신도 있음. 

💚 현실주의: 한국의 시대 상황. 현실을 담아내고자 노력한 표현이 전개됨. (작품을 보면 바로 이해할 수 있어서 접근이 쉬움)

💚 다원화와 세계화: 기존의 이념적 경직성보다 개인의 정체성과 문화적 다양성에 초점을 맞춤. 백남준, 강익중, 서도호, 이불 등.

💚 개념미술: 예술의 본질은 [아이디어]나 [개념]에 있다고 봄. 기존의 결과물 형식 보다는 창작의 사고 과정과 메세지를 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함.  박이소, 김범 등이 있음.

💚 다큐.허구를 통한 현실 재인식: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미술의 역할과 가능성을 재정의. 미술, 공연, 음악, 영화, 다큐 등 다양한 형태로 표현. VR로 한국의 폐건물에서 일어났던 일을 가상인물을 통해 몰입하는 것이 하나의 예시.

 

1) 추상미술 _ 현대미술관 내용 인용

정상화

정상화(1932- )는 두터운 물감을 바른 화면을 바둑판 모양으로 갈라 작은 네모꼴로 구획지게 하고 그 네모꼴 하나하나를 해체했다가 다시 붙여 가는 작업을 수없이 반복한다. 이러한 행위를 통해 만들어지는 네모꼴은 화면을 균열시키며 평면이면서도 '촉감적'인 공간으로 변모시킨다. 전통창의 격자형태, 담벽의 벽돌무늬를 연상시키는 화면의 균열은 은은한 백색의 색감과 함께 한국적인 미감을 드러낸다.

 

박서보

박서보(朴栖甫, 1931- 2023)의 <묘법>연작은 1970년대부터 시작되었으며 1982년 이전까지 작가는 특정한 색채와 테크닉을 고수했다.

그는 크림색에 가까운 유채를 캔버스 전체에 칠한 다음, 그 바탕색이 마르기 전에 위에서 아래로 선을 그었다. 아무런 색채도 없는 그 선들은 움푹 패인 자국만 남기는데, 이는 캔버스에 작가 자신만의 '침묵의 흔적'을 남기고자 한 작가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우환

모노하(物派)의 이론과 작업의 선구자인 이우환(1936- )의 <선으로부터>(1974)는 흰 캔버스 바탕에 파란색 선들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길게 내려 그어가면서 그 흔적을 담은 것이다. 단조로운 화면구성과 단색의 색채는 담백한 동양적 미의 세계를 보여준다. 여기에서 선들은 하나로 완성된 개체라기보다는 전체적인 조화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존재이며, 그 관계는 운율적이다. 굵기와 형태가 거의 동일한 선들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있으며, 선명한 푸른색은 밑으로 내려가면서 점차 그 자취가 사라지면서 희미해진다. 이러한 선은 결과보다는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 내재된 본질적인 의미를 부각시킨다. 이 작품의 근본적 요소인 선은 동양적인 기(氣)와 생명력의 근본이자 출발점이 되고, 따라서 작품은 마음을 비우고 선을 긋는 일회적인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무위자연(無爲自然)’ 상태에 가까워지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하종현

작품활동의 주요 개념이었던 물질성과 손 작업의 중요성은 1970년대 오브제(Object)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졌다. 긴 패널에 스프링을 부착한 (1973)은 당시 선보인 실험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흰 패널 바탕에 부착된 스프링의 일정한 배열은 기존에 그가 탐닉했던 기하학적 추상의 배열을 떠올리게 해주나 중간 중간 튀어나온 고르지 않은 스프링의 존재는 송수철의 물성을 더욱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작가는 물질과 동화되어 어떠한 서술적, 구상적 표현도 거부한 채 화면의 표면 그 자체가 만들어 내는 질감과 그 느낌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응노

1986년에 제작된 ‹군상›은, 이응노의 후기 작품 세계를 대표하는 그림이며 화면을 빽빽하게 채운 사람들은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각기 다른 동작과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처럼 제각각인 이들의 몸짓은 화면에 강한 리듬감과 역동성을 부여하며, 마치 화면 전체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런데 이 군중들의 몸짓은 무엇을 의미할까? 한국이 해방되던 날, 길 한복판에서 동생을 안고 춤을 추며 기쁨을 표현했다는 작가의 회상처럼, 이것은 환희의 몸짓일지도 모른다. 서로 연대하며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의 몸짓을, 서예적인 필선을 통해 힘차게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2) 실험미술 _ 현대미술관 내용 인용

정상화

곽인식은 1960년대 도쿄 거리에서 커다란 쇼윈도 유리를 보고 “섬뜩하지만 불가사의한 유리. 투명감이 있고 밉살스러운 만큼 예쁘다. 그러한 유리에 나는 끌린다.”라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유리의 물질성에 주목하여 유리 자체를 작품화했다. 우선 그는 깨야 할 유리판의 크기만큼 마당에 땅을 판 후 그 속에 유리를 넣었다. 그 후 쇳덩이를 이용해 유리를 깬 다음에 유리 조각을 주워 패널에 본래의 상태로 세밀하게 붙였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모양의 균열이 나올 때까지 유리를 깨고 버리기를 반복했다. 〈작품〉은 천이 덮인 패널 위에 원 형태로 금을 낸 유리를 부착하고 철 그물로 고정한 모습이다. 이 작품은 곽인식의 유리 작업 중에서 작가의 의도와 가장 잘 맞는 균열의 형태를 보일 뿐만 아니라 작가가 이 작품을 시작으로 단일한 소재에 주목하여 물질성을 드러내는 작업을 했다는 점에서 곽인식 작품 전체의 분수령이 되기도 한다. 그의 물질에 관한 본질적 탐구는 이 시기 작가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줬다.

 

 

박현기

돌 사이에 돌의 영상을 담은 모니터들을 쌓아올린 구조로 되어있다. 실제 돌들이 쌓여 있는 듯 보이지만, 각 돌 사이에는 비디오 모니터가 놓여 돌의 모습을 영상을 재현한다. 

작가가 돌탑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한국 전쟁 당시 피난길에 사람들이 소원을 빌며 돌을 쌓던 광경에서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다. 작가는 [돌탑]이란 형상에 인간의 염원, 희망, 기원의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실제 돌과 돌의 이미지를 한 공간에 쌓아 올리면서, 실재란 무엇인가?, 모니터 속 돌이 허상이라면 실물의 돌만이 실재일까? 라는 철학적 물음을 던지기도 한다.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곽인식

계량기와 돌 이라는 작품은 무게를 측정할 수 없는 계량기 위에 돌이 얹어진 모습이다. 여기서 작가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기준(숫자, 시스템, 사전적 가치)이 진정한 의미를 담보하지 않는다는 인식, 그리고 존재의 의미가 각자의 경험과 해석 속에서 새롭게 창조되어야 한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 

이 작품에서 저울이 보여주는 숫자는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라 인간이 합의한 약속된 체계일 뿐이며 단순히 그 무게만으로 돌의 본질을 말할 수 없다. 이렇게 인간의 인식 체계가 필연적으로 간극과 왜곡을 포함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3) 현실주의 _ 현대미술관 내용 인용

고영훈

1980년대 대표작인 ‹돌›에서 작가는 자연물인 돌을 영문판 장서와 병치시켜 자연에 대한 인위적인 문명의 충돌을 표현하였다. 작가는 청계천의 고서점에서 구한 영어 원서의 낱장을 캔버스에 붙이고 그 위에 또 다른 책의 낱장을 붙인 후 그림자를 스프레이로 표현하여 실재감을 표현하였다. 그 위에 돌을 아크릴 물감을 사용하여 극사실적으로 그려 넣어서 실제 같은 환영의 공간을 만들어냈다. 관람객들은 이 책에 쓰여진 글을 읽을 필요도, 읽을 수도 없다. 글자가 매우 빽빽하게 채워져 있을 뿐만 아니라 논리적인 연결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배치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돌과 책은 각각이 대표하는 자연과 문명의 상징이며, 또한 시각적 기호일 뿐이다.

출처: google arts&culture

 

민정기

민정기(1949- )는 1980년대에 민중미술운동에 참여했던 작가로,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을 보여주는 작품,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기 위한 작품 등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보여주었다. <영화를 보고 만족하는 K씨>(1981)는 자본주의 사회를 풍자한 작품이다. 화면은 이분되어 있는데, 왼쪽은 해골과 같은 형상의 남자를 하얀 가운을 입은 여러 명의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들이 조사하고 재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 작품은 현대 사회에서 감시 당하고 있는 인간의 모습과 그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그리고 있다. 스크린을 빼고는 모두가 회색 톤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화가가 도시와 대비하여 이상적으로 그리고 있는 농촌의 모습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오윤

동학혁명, 한국전쟁, 5월 민중항쟁 등 한국역사의 비극적 상황 속에서 희생된 민중의 모습이 한을 품고 죽은 귀신들의 형상으로 그려져 있으며 매우 비극적인 상황을 묘사했으나 작가는 서술적 시간의 구상과 미묘한 색채, 기(氣)의 형상화를 통해 담담하고 따뜻한 작가적 감성을 엿볼 수 있도록 하였다.

출처: google arts&culture